H5 | 주시경마당 (Ju Sigyeong Madang)

 HXCF+WF5 서울특별시


<주시경 마당>은 2013년에 주시경을 기념하기 위하여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내수동 공원을 주시경 마당으로 이름 붙이고 여기에 주시경과 헐버트의 상징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주시경은 강의용 책 보따리를 들고 다닌 모습을, 헐버트는 그가 직접 펴낸 최초의 한글 전용 교과서 『사민필지』를 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헐버트는 신학문을 배우던 주시경에게 한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분이자 독립신문 발간을 위해 함께 애쓴 동지이다.

주시경은 세종 이후 처음으로 한글과 우리말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한 학자요 한글운동가이다. 어려서 처음에는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고, 양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한문학을 배우다 쉬운 우리글에 눈을 떴다.신학문에 흥미를 느끼고 열여덟 살 때인 1894년에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도중에 인천의 관립이운학교에 들어가 속성과를 졸업하였으나 정치적 혼란으로 해운계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배재학당 보통과에 들어갔다(1896. 4.).재필이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 독립신문사 회계사 겸 교보원(교정보는 사람)으로 발탁하였다.

한글 신문을 제작하여야 했기 때문에 한글 표기법 통일이 필요, 동료 직원들과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한글 표기법 연구에 열중하였다. 우리말 문법을 최초로 정립: 《국문문법》(1905), 《대한국어문법》(1906), 《국어문전음학》(1908), 《말》(1908?), 《국문연구》(1909), 《고등국어문전》(1909?), 《국어문법》(1910), 《소리갈》(1913?), 《말의 소리》(1914) 1907년부터 본격적으로 상동청년학원, 국어강습소와 조선어강습원 등을 통해 국어운동과 국어교육을 민족운동으로 전개하였다.

간호원양성학교·공옥학교·명신학교·숙명여자고등학교·서우학교, 협성학교·오성학교·이화학당, 흥화학교·기호학교·융희학교·중앙학교·휘문의숙·보성학교·사범강습소·배재학당 등에서 강사로 활약하였다. 1914년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하던 중 병을 얻어 39살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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