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 | 원각사 터 (Wongak Temple Site)

 HXCF+493 서울특별시


원각사(圓覺社) 터 새김돌은 새문안 교회 앞, 새문안로 3길 길가 옆에 있다. 190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극장 원각사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 신극 운동의 요람으로 불렸으며 1908년 11월 이인직의 신소설 <은세계(銀世界)>를 처음으로 각색하여 상연하였다.

<은세계(銀世界)>는 강릉 두메산골에 사는 최병도(崔秉陶)가 김옥균의 감화로 구국의 일념을 품고 그 밑천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모았으나 탐관오리 강원 감사 모함으로 죽으면서 가족의 수난을 그린 작품이다.

원각사 건립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설은 1902년 고종 임금은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의 새문안교회 자리에 경축용으로 봉상사(奉常寺) 구내에 로마식 극장을 본떠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희대(戱臺)’를 연회장소를 지었는데 이것이 원각사의 전신이다.(이두현 《한국 신극사 연구》 참조)

그해 8월부터 경축 예식을 위한 협률사(協律司)라는 관청을 두어 기녀(妓女)들을 뽑아 연희(演戱)를 가르쳤다. 협률사의 활동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하여 1906년 고종의 명으로 협률사를 혁파(革罷)하고 건물은 1907년 2월부터 관인구락부(官人俱樂部) 전용건물로 사용하였다.

1908년 1월 하순, 관인구락부가 남대문 쪽으로 이전하자 그해 7월 이인직이 이 건물에 원각사를 개설하여 원각사극장이라 부르게 되었다. 궁내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국립극장이 된 원각사에서는 처음 2개월 동안은 <춘향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주로 상연하다가 11월 15일 <은세계(銀世界)>를 상연한 것이다. 당시 신연극의 효시였다.

그러나 이 최초의 신연극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여 원각사는 한때 문을 닫았다. 우여곡절끝에 1909년 11월에 완전 폐지되고 1914년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이 원각사가 한글과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한글 표기 신소설을 각색하였으니 간접 공로를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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